도낏자루 구멍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있다. 우리가 아직 그 이름을 붙이지 못한 전혀 뜻밖의 무엇.
소녀전선을 막 하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총(銃)”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찾아봤다. 뜻밖에도 소총이 한자문화권에 소개되던 16세기 이전 아주 옛날부터도 글자 자체는 있었다. ‘도끼구멍 총’이라 한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 한참 옥편을 읽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러니까 도끼를 만들 때 도끼날에 자루를 꿸 수 있도록 구멍을 내곤 했는데, 원래는 그걸 총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16세기 동아시아 사람들 보기에 총이라는 무기는 대단히 괴랄했을 것이다. 이 무쇠덩어리를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총열에 있는 길고 곧은 구멍이 그나마 그들의 지식의 지평 안에서는 도낏자루 구멍에 가장 흡사하게 보여서 아쉬운 대로 ‘도끼구멍 무기’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거기서 시작해 총신, 총강, 총구 등등으로 나아갔을 테고.
세상에 누가 도낏자루 꿰는 구멍에 관심이 있었을까? 그런 걸 총이라 부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도끼구멍도 하나의 부위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개인화기의 총구를 들여다보며 그 본질적 짜임새에서 무쇠 도끼날에 뚫는 구멍을 연상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상, 그 통찰이 오늘날에 와서는 1개 한자의 기본 새김을 아예 바꾸고 숱한 연관어를 낳는다.
요즘 굽작가님의 한중일 근대사를 읽으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지금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 한때는 이름조차 붙이지 못할 만큼 괴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있다. 우리가 아직 그 이름을 붙이지 못한 전혀 뜻밖의 무엇, 하지만 언젠가는 당연하고 익숙해지게 될 어떤 것, 다만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 그런 걸 발견하고 새 이름과 새김을 주는 일은, 그만큼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을 때 필요충분으로 일어나는 일이므로.
지금은 우리의 무엇이 도낏자루 구멍일까. 어렴풋이 생각을 시작해 본다.
최초 발행: 2017년 11월 22일, tumblr.yuptog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