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veryepics 13. 바로 그 유기견

그 어떤 개보다 멀고 외롭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곳에 버려져 죽어간 바로 그 유기견, 쿠드랴프카.

#theveryepics 13. 바로 그 유기견

■ 유기견들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내다 버린 그 많은 강아지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끝까지 길을 떠돌다 허무하게 길에서 죽든지, 동물보호소에 인도되어 처분을 기다리든지.

■ 아니면, 인공위성에 탑승하든지.

■ 1954년의 모스크바에서도 버림받는 강아지는 흔했다. 작은 체구에 털이 곱슬거렸던 한 암컷 ‘믹스견’이 있었는데, 이 강아지도 한 고위 공직자 집안 가정부가 피치 못해 다른 가정에 위탁했던 것이 결국 그 집에서 버림받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 그 암컷 강아지는 러시아의 추운 거리를 3년 가까이 배회하면서 여러 고된 환경을 견뎌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말귀를 알아듣는,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개로 자라났다.

■ 1956년에 모스크바의 개몰이꾼들이 포획한 이 강아지는 보호소가 아니라 ‘항공의학연구소’에 팔려 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특별 시험 비행”, 곧 동물 우주선 발사 계획의 훈련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기나긴 떠돌이 유기견 생활이 일단 끝난 것이었다.

■ ‘작은 곱슬머리’라는 뜻으로 “쿠드랴프카”라는 이름을 받은 이 강아지는 1년이나 이어진 각종 훈련을 잘 참아냈다. 어쨌든 쿠드랴프카에겐 이제 더 이상 방황의 나날이 없었으니까. 세 끼 밥, 잠잘 곳, 함께 지내는 개들, 그리고 그에게 관심을 주는 연구소 사람들.

■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다음날, 1957년 10월 5일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는 로켓 설계국 국장 코를료프에게 “10월 혁명 40주년”인 11월 7일까지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할 것을 주문했고, 2호의 이름에 걸맞는 혁신을 한 달 안에 보여줄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코를료프는 결국 개를 태워 궤도에 띄우는 것까지만 성공시키자고 결심한다. 시간이 모자랐고, ‘지구 귀환’ 시나리오는 애초부터 배제되었다.

■ 연구소 사람들의 슬퍼하는 표정을 보았을 텐데, 그럼에도 쿠드랴프카는 언제나처럼 순순히 스푸트니크 2호의 갑갑한 객실에 들어가 주었다. 문이 외부에서 이중으로 밀봉되었고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1957년 11월 3일 새벽 5시 반에 카자흐스탄의 발사대에서, 쿠드랴프카는 대기권 밖으로 떠나야 했다.

■ 흐루쇼프와 공산당은 ‘짖는 것’이라는 뜻으로 “라이카”란 이름을 붙여, 라이카가 소련의 위대함을 떨쳤다는 식으로 떠벌였다. 그러나 사실 라이카, 아니 쿠드랴프카는 발사 7시간 만에 기체 내부 과열로 우주에서 사망했고, 스푸트니크 2호는 아무런 체제 홍보 효과나 과학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잊혀졌다.

■ 그를 담당했던 가젠코 박사는 훗날 “그의 죽음을 정당화해 줄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인간이 제멋대로 쓰고 버린 모든 동물들에 대한 사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과를 받아낸 것은 한 마리 유기견이었다. 그 어떤 개보다 멀고 외롭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곳에 버려져 죽어간 바로 그 유기견, 쿠드랴프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종이 한 장의 새로움, <바로그찌라시>

최초 발행: 2013년 11월 6일, facebook.com/theveryflier
재발행의 변: 최초 발행 직후 예상보다 더 서글퍼하는 댓글창을 보고서 그때는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서는 그 시절의 나에게 내가 당황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그때의 나는 메마르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한 인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추도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Subscribe to A pencil in His hand

Don’t miss out on the latest issues. Sign up now to get access to the library of members-only issues.
jamie@example.com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