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판을 눈팅하며 팝콘 네 통을 비운 소감

'코인 광풍'은 실물 경제의 파탄을 암시하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다.

자고로 수요일 저녁이 뻘소리 지껄이기 가장 좋은 때라고 하였으니 간만에 빗갤과 코인판을 눈팅하며 팝콘 네 통을 비운 소감을 좀 써볼까 한다. 아마 굉장히 공감하기 힘든 나만의 공상론이 될 터인데 아무튼...


1. 2030은 절대 힘들지 않다.

"고점에 물렸네" "시드가 녹았네" 우는소리를 해대는 것들 가만 살펴보면 생각보다 돈이 많다. "있는돈 없는돈 다 끌어모은 N천만원" 하는 소리에서 내가 놀라는 대목은 다 끌어모았다는 부분이 아니라 무려 N천만원이 있다는 부분이다. 정말 이상하다. '코인'처럼 유동성 그 자체인 자산도 달리 없는데, 다들 어디서 돈이 이렇게 나서 코인질을 하지?

아무튼 2030은 정말로 "돈이 없어서 돈벌어보려고" '코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견물생심'이다. 사실 그들은 어느 정도 현찰을 갖고 있고, 그래서 괜히 욕심이 나서 들어가보고 도망쳐나오는 것이다. (막상 정말 가난한 이들은 코인을 언감생심 생각도 못 하고 있기에 이 판에서 아예 비가시화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우는소리가 전혀 슬프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 더 나은 질문은 이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그 현금이 다 어디서 났을까?

2. 지금 시장에는 길 잃은 현금이 떠돌고 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거 다 '영끌'해서 대출받는 거라고. 가계부채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글쎄 확실히 가계부채 자체는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좀 뒤집어서도 살펴보자. 그러면 은행은 그 목돈을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덜컥 빌려들 주느냐 말이지. 어쩌면 지금은, 은행 입장에서마저도, 그깟 푼돈 얼마쯤 금고 안쪽에 묻어두느니, 저 동태 눈깔 뜬 "개인투자자"에게라도 빌려주고, 약간의 위험을 무릅써서 이자를 받는 편이 더 나은, 그런 상황인지도 모른다. 음, 왠지 그 "개인투자자"도 비슷한 속셈일 거 같은데?

통계자료가 없어서 아무 근거 없는 소리긴 하지만, 아마도 지금 시장에 풀려 있는 유동성은 역대급일 것이다. 그리고 그 유동성들은, 정상적으로 활기찬 시장이라면 으레 그러할 방식으로 순환하지 않으면서, 빗썸과 업비트의 중앙 계좌에 턱턱 막혀 경색(梗塞)하는 중이다.

3. '코인 광풍'은 실물 경제의 파탄을 암시하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다.

애덤 스미스와 존 케인즈가 상정했던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의 도식에서, 돈은, 아무래도 실물 경제로 회귀하며 순환한다. 정육업자가 여행을 다니고 관광 가이드가 고기를 사 먹는, 그런 식으로 돈을 쓰는 일이 활발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좋은 사회라는 것이다. 뭐 사실은 그 반대가 더 정직한 진술이다. 구성원들이 실물 경제에 무심하고 자본 증식에만 목 매는 사회야말로 더 볼 것 없이 병든 사회이다. 정육업자가 여행사 주식에 정신을 쏟고 관광 가이드가 우시장 재건축 투자건에 올인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응? 그거 지금 이 나라 꼴이잖아? 모든 "코인러"들이 그걸 누가 모르냐는 식으로 인정하는 바 그 어떤 '코인'도 정말 실물 경제에 분명하게 기여하는 바는 없는데도, 기대수익률과 확률 변동이라는 단 두 가지 요소 덕분에 지금 '시장'에는 '잡코'들이 난립한다. 그리고 다들 "고기를 먹어도 한 번은 더 먹을 돈"이란 걸 알면서도 그걸 꼬라박고 있다. 코인을 규제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런 사회의 주범이라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4. 지금 상황은 마르크스가 진작에 예언해 놓은 거의 그대로 신자유주의가 이끄는 묵시록적 파국이다.

방금 적은 것을 정정하겠다. '코인'은, 이런 사회의 주범이라기보다는, 가장 최근의 공모자에 가깝다. 대체 어떤 피라미드 조직 범죄에 공모했다는 것일까? 그 짐승의 이름은 신자유주의다. 만사에 탈규제, 민영화, 미시 자본 친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한 코인 같은 뭔가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마르크스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자본은 내버려두면 모든 걸 빨아들일 때까지 자기증식을 한 다음 아무 일도 안 할 거라고. 그건 그대로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간의 정상적인 문명 사회들은 그 파괴적 팽창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각종 봉인을 붙여 왔었다. 근데 그걸 "규제"라고 부르니까 규제는 무조건 나쁘다는 떼쟁이들이 나왔고, 지금은 그들이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라 자처하며 그 봉인들을 떼는 중이다. 그때에 또 내가 보니 그 규제가 떨어질 때에 떡락이 내려서 땅의 삼분지 일이 불타고 누구든지 '월렛'이 없는 자는 시장에서 매매를 못하게 하더라.

5. 강제로라도 이 자본들을 실물 내수 경제에 환원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나는 코인질은 안 하지만 다른 '투자'를 하는 것이 있는데, P2P 대출이 그것이다. 일반인이 일반인에게 돈 빌려주는 것인데, 나는 '이번 달은 얼마를 부어놓자'하는 정도만 정한 다음, 그 돈이 떨어질 때까지 모든 가용한 '상품'에 5천 원씩 붓고 있다. "수익률"이며 채권 상세 따위 쳐다도 안 보고, 대신 어떤 상품에도 절대 1만원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평균 "8퍼센트" 수익률에 채권 부실률은 3% 정도라서 "익절"이 된다. 코인판에서는 이걸 '씨뿌리기'라는 특수한 기법으로 본다지?

꼭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고, 이렇게 부은 돈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실물 경제에 바로 투입되기 때문에 '코인판 시드'와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런 걸 더 궁리해내야 된다. 지금 당장 둘 중 하나를 살려내라고 한다면, "손실률보고 열받아서 모니터깨부(셨다고 주작질하)시는" 2030님네들보다는, 주말 손님들에게 모니터 팔아 연명하던 용팔이들을 살리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은 이런 사례로서는 얻어걸린 편이다. 더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노골적으로, 실물 내수 경제에 돈을 쓰라고 유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이행을 고심해야 한다.

6. 내일의 행복만 바라는 사회는 오늘도 그 다음 오늘도 그저 불행할 것이다.

원래 '여러분이 동의 못할 생각'을 푸는 게 목적인 글이었는데 어느샌가 중학생 웅변대회 원고가 되었으므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서 한 마디만 더 하겠다. 실물 내수 경제에 돈을 쓰면서 사람들이 거기서 행복 찾는 사회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씨발남들은다따는코인판 왜나만못벌어" 하는 코인충들이나, "우리같은 서민들은 강남 꿈꾸지 말랍니다"라며 성토하는 부동산 카페 회원님들 같은 분들은 특히 더.

그런데 실은 바로 그 부분이다. 돈 버는 게 왜 행복이고 집값 오르는 게 왜 행복이며 단가/수익률 떡상이 왜 행복이고 청약 당첨되는 게 왜 행복인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미래가 덜 불안해진다는 거, 다른 하나는 내집 내차라는 "소박한 꿈"의 실현이라는 거겠지. 근데 그 행복의 조건이라는 게 일단은 숨은 전제조건(ex. 서울 중심의 한국 사회)이 많거니와, 어쨌든 근본적으로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거거든. 이건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히는 자학 행위일 뿐이며, 암만 좋게 쳐줘도 병든 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인간이 되려는 시도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것부터 좀 재고하고 의구하면 안 될까 싶다. 사람들이 코인과 주식과 부동산에 미치는 것은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의심해볼 수는 있다는 말이다.


이번엔 이 이상은 뭐가 더 안 나올 거 같아서 그만둔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지만 걔도 하루 종일 시끄러울 수는 없는 법이다. 혹시라도 다소나마 동의가 되는 분이 계시다면 슬퍼요를 눌러 달라. 다른 분들은 알아서 화나요 웃겨요를 찍으실 터이니.

최초 발행: 2021년 5월 26일, facebook.com

Subscribe to A pencil in His hand

Don’t miss out on the latest issues. Sign up now to get access to the library of members-only issues.
jamie@example.com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