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해의 무엇이 그렇게 충격적이라는 걸까
남자가 짓는 죄에 적용되는 그 디스카운트가 이은해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지 않나?
내가 “랟팸뇌"에 절여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짓는 강력범죄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유난히 더 유난이지 않은가?
그의 유년 시절에는 장애인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그를 기특히 여긴 MBC가 새 집을 구해준 경험이 강렬하게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은해였다면, 이후 이것은 어려운 삶을 헤쳐나가는 기본 방침 내지 전략이 되지 않았을까?
- 나를 불쌍해할 것 같고 돈이 있는 자를 물색한다.
- 그로부터 계약을 따내고 돈을 탄다.
-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처리하고 묻어버린다. 자기 집이 러브하우스로 리폼된 이후 누구도 자기 인생에 관심 갖지 않았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로 그냥 묻어버리면 아무도 관심 안 가질 것 아닌가?
-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1과 2를 상시 사업으로 다시 계속하거나 추가 확장한다.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이란, 그에게는 그저, 그간 했던 대로 이 프로토콜을 따르려다가 재수 없게 삐끗해 버리고 만, 그래서 재수없이 TV에 또 얼굴을 내밀게 되고 만, 뭐 그런 사건 정도인 것은 아닐까? <시사멘터리 추적>에 출연한 이수정 교수는 이은해가 "자기 조건에 맞는, 즉 자기의 범죄습성을 받아주고 스폰서가 돼 줄” 남자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고 프로파일링했다. 그렇게 구한 스폰서 남편 ‘윤상엽'이란, 기십 년 전 그에게 집을 사준 '신동엽'과, 그녀 입장에선,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오늘날 온 나라의 야단 법석은, 좋게 말해서 씁쓸하고, 나쁘게 말해서 냉소가 나온다.
현시점에서 이은해의 혐의는 '상대방을 가스라이팅하여 스스로 자살하게 만듦으로써 보험금 사기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안 자체의 흉악함을 완곡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제기하고 싶은 의문은 이것이다. 왜 우리는 이 정도 악에 이 정도까지 진심으로, 활기차게, 내심 기쁘기라도 한 듯이 경악하고 있는가?
남자들의 죄를 조금만 열거해 볼까? 예컨대 그들은 단지 지금 밖에 비가 내린다는 이유만으로 지나가던 부녀들을 닥치는 대로 목 졸라 죽이고 강간하고 버리기를 십수 번 거듭한다. 또는 그들은 단지 여자 국부를 몰래 엿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여자화장실에 몰래 침입하여 구멍을 뚫고 초소형 카메라를 달아 인터넷으로 중계한다. 아니면 그들은 예컨대 지인 능욕 딥페이크를 만들고 “유작"을 돌려보고 "성인이 나오는 성인물을 올리지 말라"는 '규칙'을 붙인 딥웹을 운영한다. 자, 경악은 어디 있는가? 지금 이은해에게 쏟아지고 있는 언론의 관심은 어디 있는가?
각 방송사들은 이제 와서 "사이코패스"를 처음 보았다는 것처럼, "가스라이팅"의 존재를 이제야 알았다는 것처럼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야단 법석을 떨고 있다. "아니 어떻게 러브하우스에 출연했던 그 대견한 여자아이가 어떻게 저렇게?"에 놀라기 바쁜 그들은, 작년에 터졌고 올해에 터졌고 지난 달에 터졌고 어제 터졌고 오늘도 터지고 있는 강간, 성폭행, 성추행, 외도 뉴스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단 말이지. 아마 이 '유난히 남자들만 짓는 강력범죄'들은 내일도 터지고 모레도 터지고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도 다음 정권에도 터질 테지만.
내친김에 조금만 더 뇌절을 해볼까? 보험금을 노리는 행위가 뭐가 그렇게까지 잘못인가? 내가 저보고 죽으라고 했나? 저가 나 만나고 싶어서 돈 준 거지 누가 저보고 빚을 지라고 했느냐 말이지. 누가 저보고 우리 집에 무작정 들어와서 새 집을 지어주어서, '이런 식의 만남을 몇 번만 더 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겠다'는 허황된 꿈을 심어주라고 했던가? 그래서, 나라는 사람의 불쌍함과 대견함과 예쁨을 파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방송 출연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성매매를 좀 했다 한들, 그러다가 봉을 잡아서 잘 살려다가 이렇게 됐다 한들, 도대체 어디가 잘못이라는 말인가?
IMF 시대에 이 사회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는 다 포기한 다음, '양심 냉장고'와 '러브하우스'로 극소수만을 선택적으로 구제해 왔다. 이후 비정규직 도입, 한미 FTA, 이명박, 박근혜 등등을 거치며 진행되어 온 것은 보편 복지, 책임 국가, 도덕 공동체의 완전한 해체 그리고 각자 도생의 최대 이윤 추구라는 유일한 규칙으로 그 모두를 대체한 과정이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이은해의 삶은 이 과정을 더할 바 없이 충실히 체화한 여정이었을 뿐 아니었나? 그 끝에서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경악스러운 파국은, 솔직히 말하면 낯익고 새삼스러운, 사실은 진작에 예견하고 각오했어야 하는 바가 아니었는가?
이은해의 최근 행각과 그 범죄 혐의에 경악하고 있는 이들은 "영화 '검은 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며 화들짝 바들짝 놀라고 있다. 나는 글쎄 별로 놀라지 않고 있다.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설령, 이 영화(와 원작 소설)가 극도로 잔인하고, 이 영화가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마녀를 앞세워서) 세간에 처음 알렸고, 그 행각을 거의 그대로 수행한 실존 인물이 우리 눈앞에 나타났고, 그게 우리가 과거에 희망의 집을 새로 지어주며 함께 IMF 시대를 헤쳐나가자고 격려해 주었던 소녀였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이 모든 사태 앞에 그저 심드렁하다. 나 스스로도 이상하다 싶을 만큼이다.
왜냐하면, 냉정히 생각해보면, 나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그의 삶을 살았다면 저렇게 안 될 수 있었을까? 방송사가 단 한 번 내게 지나치게 큰 행운과 감당할 수 없는 세간의 관심을 주고 훌쩍 떠나간 경험을 하고 나면, 이후의 삶은, 그때의 그 관심과 행운을 갈구하는, 그래서 정상적인 생애 경로를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삶으로 망가져 버리지 않았을까? 사회가, 국가가, 이 공동체가 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면, 숱한 남자 범죄자들이 나보다 더 강력한 범죄들을 저지를 때조차도 세상이 전혀 나서지 않는다면, 내가 낸 보험금 좀 돌려받으면서 러브하우스 출연자의 이름에 맞는 삶을 갈구하는 게 그렇게 잘못일까? 막말로 모르는 여자 두개골을 장도리로 깨겠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놀라고 있는 것은, 여자 강간범이 없다는 사실, 여자 연쇄살인범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에 솔직하려 했을 뿐인 차원의 강력범죄자 여자가 놀라울 정도로 적다는 사실이다. 여자는 항상 마녀 아니면 성녀이고, 그래서 결코 사회 탓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비난에는 사실은 이 사회의 구조와 구성원들이 다함께 감수해야 할 몫까지도 합산돼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남자가 짓는 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적용되는 그 디스카운트가, 이은해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지 않나 한다. 그 부분이 내게는 놀랍다. 그가 받은 범죄 혐의의 내용들에 비해서는 한참 더.
최초 발행: 2022년 6월 6일, yuptogun.tumbl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