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너희가 하나님과 부동 자산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Disclaimer: 이 글은 필자가 케이뱅크 계좌를 개설한 날 작성되었음. 100 155 370075)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는 책이 있다. 서울특별시 안에 집 한 채 갖고 사는 서민의 꿈을 이루고 싶거든 전세니 월세니를 살지 말고 빚을 내든 뭘 하든 해서 제일 싸고 합리적이다 싶은 틈바구니 지역을 절묘하게 공략해 아파트를 사서 부동산 기반 자산을 늘려가라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서울 아파트 매매 DB를 어딘가에서 긁어와 검색해볼 수 있는 사이트까지 만들었다(나는 그 사이트의 프론트엔드를 멋모르고 도와주기까지 했다).

아주 훌륭하고 통찰력 넘치는 것이 일견 부동산 불패 신화가 떵떵거리는 우리나라에 대한 책 한 권짜리 블랙코미디 희곡이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이다. 저자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이 책의 메시지에 찬동하는 사람들의 핏발 서린 공포와 분노를 읽을 수 있다. “속 시~원한 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분통터져요. 8.2대책도 그렇고 어떻게 이렇게 퇴직 다가오면서 좀 안정적으로 살고싶다는 거를 이렇게 막아대는지 모르겠어요.”


글쎄, 성경은 퇴직자가 처분 가능한 자산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예수님의 견해는 이렇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청지기 하나를 두었다. 그는 이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 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그 일을 볼 수 없네.’

그러자 그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낯이 부끄럽구나.
옳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날 때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아들이도록 조치해 놓아야지.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였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가 그에게 말하기를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받아서,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출처]

이 교훈 속에서 청지기는 당대의 법률과 상거래 관습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아주 교묘한 작전을 치른다. 당시는 지주와 농노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래의 이자가 통상 50%에서 최대 100%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청지기는 아마도 그 막대한 이자를 법대로 고치는 꽁수 아닌 꽁수를 쓴 것이라고 봄직하다. 잘은 몰라도 그는 한때 동네의 흔한 마름 따까리였던 것이 어느날 갑자기 경제민주화를 실현한 정의의 투사로 평가가 바뀌었을 것이고, 당연히 친구와 동지들이 붙었을 것이며, 주인도 그놈 참 머리 좋다 싶기도 하고 자기가 불법을 한 건 사실이니 뭐라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는 명백하다. 돈을 쌓을 수 있다고 해서 마냥 쌓지 말고, 눈치껏 알아서 세상에 뿌려서 영혼을 사고 이웃을 구하라. 그게 천국에 썩어지지 않는 상급을 쌓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돈이 없는 서민이라면 더더욱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에서부터 과감한 시도를 해서 정부와 1금융권이 제공하는 대출 상품을 이용해 비약적인 자본금의 도약을 이루라는 것, 그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닐뿐더러 금지하거나 비난하거나 죄악시할 만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도 된다. 아무도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여기서, 이것의 실상이 지대 추구, 불로소득 확보, 유산자 계급으로의 전향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순결하고 정당한 욕망인 양 호도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지적을 굳이 생략한다!)

모두가 갖고 있는 찜찜한 기분의 정체는 이것이다. 진심으로 오로지 그런 인생을 추구하고 살아도 괜찮은가? 서민이니까, 돈 없고 가난하니까 집을 가져야 하는가? 서민이니까, 서러우니까 “강남 3구로의 진입의 사다리”는 결코 걷어차여서는 안 되는가? 정말 그게 인생의 전부인가? 더 잘 살지도 모르니까 좋은 집을 찾자는 것이지, 무슨 순 서울로 가야만 잘 산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쯤에서 내 견해를 밝히자면, 나는 누구나 강남 3구로 진입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강남 3구와 충북 음성군이 완전히 indifferent한 세상을 주장하고 요구하는 바다. “사다리”는 더 많아질 것이 아니라, 그냥 별 필요가 없어져야 한다!)

우리가 저 청지기의 처지가 되었을 때 해야 할 일은 둘 중 무엇일까? 주인으로부터 받게 될 퇴직금을 가지고 주인이 하던 돈노름 사업을 소규모로 시작해 착하고 공정한 서민 금융 사업을 전개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분명 손해가 가는 짓이지만 까짓거 좋은 일 한다 셈치고 채무자들을 연락 돌려 자기 권한 안에서 있는 힘껏 탕감을 해주는 것일까?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그리스도께서 대놓고 알려 주셨으니, 필사적으로 세상에 베풀고 플로잉을 하고 끝없는 재정싸움을 이어나가며 나그네로서의 제자됨을 체화해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세상에 벽돌집 지으러 온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걷어서 어디로든 약속하신 곳에 펼 수 있는 텐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세상이 광야이고, 세속과 죄악이 우리더러 그러니까 더더욱 서울 노른자 땅을 잡아서 제2롯데월드 같은 것을 지어올리자 꼬드겨도, 우리는 끝끝내 얼마 되지 않는 맡겨진 자본에 예수님 보혈을 묻혀 복음직스럽게 뿌리고 다니는 게 옳다. 그게 잘 사는 것이다. 그 재물이 썩어 없어질 때 들어갈 처소가 생길 것이므로.

배우자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부하 직원이 생기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넌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말라고? 죄송하지만 그런 훌륭한 항변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예수님 그리고 저 “못돼먹은” 청지기한테나 가서 하시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돈이 없을수록 더럽고 치사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네게 빚진 입주자들에게 방세 받아 다음 집 계약금에 고이지 말고 앉혀서 보증금을 쉰 말로 깎아주어라! 너희가 하나님과 부동 자산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최초 발행: 2018년 1월 21일, yuptogun.tumblr.com
재발행의 변: 노골적으로 단 한 사람을 저격하려고 했던 글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찾은 그의 블로그에 "나는 대단히 도덕적이거나 선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라고 돼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저격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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