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veryepics 4. 바로 그 방송사고
■ 국회 5공화국비리특위가 여야간 대립으로 표류가 예상됩니다. 미얀마 정부가 계엄령을 내렸습니다. 서울시는 새로운 지하철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 최고기온이 34도를 웃돌던 1988년 8월 4일, 밤 9시 20분의 일이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136의 35번지”에 사는 소창영이라는 남자가 <뉴스데스크> 생방송에 난입하여, 앵커의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고 자기 귓속에 도청 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막무가내로 외쳤다. 벼락같이 뛰쳐나온 제작진들이 19초만에 그를 끌어냈고, 당시 앵커였던 강성구 해설주간은 기가 막혀서 약 3초간 허공을 보고 있다가 이렇게 수습했다. “아… 뉴스 도중에 웬 낯선 사람이 들어와 행패를 부렸습니다마는…”
■ 소창영(蘇昌永)은 낯설지만 평범한 1964년생의 선반공이었다. 1987년 7월의 어느 날 점심시간에 구로구 기계상가에 있던 일터에서 축구공으로 오른쪽 귀를 맞아 고막이 터진 그는, 그 이후 그의 “오른쪽 귀에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 진동음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 1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어느 병원도 이 무시무시한 음모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다. TV 방송에서 호소해 보려고 <주부가요열창> 녹화 방송이나 장충체육관 등에 난입했지만 쫓겨났고, 경찰이 보내 준 청량리 정신병원에서마저 치료비 부족으로 퇴원을 당하자, 그는 본때를 보여주기로 맘먹는다.
■ 퇴원 사흘 후, 밤 9시에 그는 MBC 담벼락을 넘고 엘리베이터 4층 버튼을 누르고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가 보도국 A스튜디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 시절 ‘앵커에게 긴급히 전달할 내용이 있는 스탭’이 그렇게 하듯이, 데스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렇게 이 사고는 88년의 “10대 ‘뉴스’”의 하나로, 그리고 한국 최초의 생방송 사고로 등극(?)한다.
■ 환청, 피해망상, 기괴한 행동 등을 보인 소창영의 증세는 전형적인 “조현병”이었다. ‘조현병(調鉉病)’이란 대한정신분열학회가 제안한 “정신분열병”의 새 이름이다. 정신분열이 ‘정신이 쪼개짐’을 의미한다면, ‘조현’이란 “현악기를 튜닝하는 것”을 뜻한다.
■ 6.29 선언 이후에도 벗지 못했던 “조국근대화”의 강박과 ‘삼청교육대’의 트라우마, 이제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닥친 88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목표, 거기에 불볕더위의 불쾌지수까지 섞여, 1988년 8월은 한국 사회 전체가 정신없이 조현되고 있던 시기였다. 망상 음모론 하나쯤 터질 만도 했다.
■ 정작 당사자 소씨는 1991년 3월 22일 이후의 소식이 없고 그가 살았던 집은 이제 일개 단독주택이지만,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라는 그의 절규는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현대 한국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1996년 결성된 락밴드 《내귀에 도청장치》의 이름이 여기서 왔고, 2013년 현재까지도 이 사건과 그 한 마디가 각종 프로그램과 광고와 만평에서 회자되고 있다. 조현병이 의심되는 거의 모든 블로거들은 오늘도 이 사건을 하나의 역사적 대사건으로 각별히 다룬다.
■ 대한민국 생방송 역사의 첫 번째 방송사고는 어떤 한 조현병 환자의 음모론이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큼은 음모론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시의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던 혼란한 심정과 막연한 불안은, 귀에 도청장치가 돼 있다는 바로 그 의심으로만 해명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라, <바로그찌라시>
최초 발행: 2013년 9월 2일, facebook.com/theveryflier
재발행의 변: 한국 최초+최악의 생방송 사고는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1974년 광복절 행사 생중계다. 하지만 그 사건이 '에픽'이 아니라는 생각은 여전히 별로 변함없다.